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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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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aej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5월 3일 (일) 18:01 판 (새 문서: === 용어명(標題) === 분별성 (分別性) === 정의(Definition) === 분별성은 사물이나 경계를 대할 때 이것과 저것, 옳고 그름, 대소 유무 등을 나누어 가리고 구별하는 마음의 성질을 의미한다. 원불교에서는 마음이 뚜렷하고 고요한 본래의 참된 '정신(精神)' 상태에는 이러한 분별성과 주착심(住着心)이 없는 것으로 정의한다. === 어원 및 배경(Origin & Background) === 원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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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명(標題)

분별성 (分別性)

정의(Definition)

분별성은 사물이나 경계를 대할 때 이것과 저것, 옳고 그름, 대소 유무 등을 나누어 가리고 구별하는 마음의 성질을 의미한다. 원불교에서는 마음이 뚜렷하고 고요한 본래의 참된 '정신(精神)' 상태에는 이러한 분별성과 주착심(住着心)이 없는 것으로 정의한다.

어원 및 배경(Origin & Background)

원불교 『정전』의 핵심 수행 과목인 삼학(三學) 중 '정신수양(精神修養)'의 요지를 밝힐 때 중심 개념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본래 성품과 일원의 자리는 원래 대소 유무에 분별이 없는 텅 빈 자리이나, 공적 영지(空寂靈知)의 밝은 빛을 따라 분별이 나타나고 선악 업보의 차별이 생겨나게 된다. 수도인은 외부 경계를 따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분별성과 어딘가에 얽매이는 주착심을 없애어 본연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수양 공부를 해야 한다.

상세 설명(Description / Explanation)

  • 본래 무분별(無分別)의 자리: 우주 만유의 본원이자 일체 중생의 본성인 일원(一圓)의 자리는 본래 대소 유무에 대한 아무런 분별이 끊어진 자리이다. 인간의 본래 성품 역시 분별과 주착이 없는 깨끗하고 고요한 바탕이다.
  • 정신수양과 분별성 제거: 원불교에서 '정신'이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따라서 '수양'은 안으로 일어나는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애고,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않음으로써 이 뚜렷하고 고요한 본래 정신을 길러내는 것이다.
  • 선(禪)의 근본 바탕: 무시선법(無時禪法)에서도 선(禪)이란 원래 분별과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깨달아 얻어 마음의 자유를 얻는 공부라고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수행의 궁극적 경지인 대각여래위(大覺如來位)에 오르면, 동(動)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靜)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원만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

관련 교전 인용(Primary Sources)

  •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니라." (원불교 정전 제3 수행편 제4장 삼학 제1절 정신수양)
  • "일원(一圓)은... 대소 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언어 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공적 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원불교 정전 제2 교의편 제1장 일원상 제1절 일원상의 진리)
  • "선(禪)이라 함은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인 바..." (원불교 정전 제3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 "본래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우리의 성품(性稟)에서 선악간 마음 발하는 것이 마치 저 밭에서 여러 가지 농작물과 잡초가 나오는 것 같다 하여..." (대종경 제3 수행품 59장)
  •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위니라." (원불교 정전 제3 수행편 제17장 법위등급)

분별성(分別性)의 사전적·교리적 의미

분별(分別)은 '나누고 구별한다'는 뜻이고, 성(性)은 '성질이나 바탕'을 뜻합니다. 즉, 분별성이란 "이것과 저것을 나누고, 내 주관에 따라 시비(옳고 그름)와 선악을 끊임없이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뜻하는 '분별성'의 구체적 해석

본문에서 분별성이 없어야 할 '정신(精神)'의 경지와 연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태도: 나(我)와 남(他), 좋고 싫음, 얻고 잃음처럼 세상을 두 쪽으로 나누어 보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으면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틀리다는 식의 편착이 생깁니다.

주관적인 편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경험, 업력(습관)이라는 안경을 쓰고 '이것은 이렇다'라고 단정 짓는 성질입니다.

요란해지는 원인: 우리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지 못한 이유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분별하며 '좋다, 싫다'는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양의 단계에서는 이 분별성을 "안으로 없이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분별'과 '분별성'은 어떻게 다른가요?

원불교 공부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분별을 없애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별(지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밝은 지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리봉공의 길)

분별성(병착): 반면, '분별성'은 그 구별에 사사로운 감정이나 집착이 붙어 마음을 요란하게 만드는 '병든 분별'을 의미합니다.

요약하자면

여기서의 분별성은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감정에 치우쳐 사물을 나누고 판단함으로써, 원래의 맑고 고요한 정신 상태를 어지럽히는 마음의 습성'을 뜻합니다.

이 분별성을 쉬게 할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은 거울처럼 투명해지고, 그 투명한 거울에 비친 그대로를 바르게 판단하는 '진정한 지혜'가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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