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새 문서 목록

새 문서 목록
등록된 사용자 숨기기 | 봇을 숨기기 | 넘겨주기를 보이기
(최신 | 최초) ( | ) (20 | 50 | 100 | 250 | 500) 보기

2026년 5월 2일 (토)

  • 07:472026년 5월 2일 (토) 07:47 대종경 수행품4장 (역사 | 편집) [679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전문 입선하는 것이 초학자에 있어서는 그 규칙 생활에 혹 괴로운 감도 있고 혹 부자유한 생각도 있을 것이나, 공부가 점점 익어 가고 심신이 차차 단련되는 때에는 이보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생활이 더 없을 것이니, 그대들은 매일 과정을 지킬 때에 괴로운 생활을 하는가 편안한 생활을 하는가 늘 그 마음을 대조하여 보라....)
  • 07:462026년 5월 2일 (토) 07:46 대종경 수행품3장 (역사 | 편집) [74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과거 도가(道家)에서 공부하는 것을 보면, 정할 때 공부에만 편중하여, 일을 하자면 공부를 못 하고 공부를 하자면 일을 못 한다하여, 혹은 부모 처자를 이별하고 산중에 가서 일생을 지내며 혹은 비가 와서 마당의 곡식이 떠 내려가도 모르고 독서만 하였나니 이 어찌 원만한 공부법이라 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공부와 일을 둘로 보지 아니...)
  • 07:452026년 5월 2일 (토) 07:45 대종경 수행품2장 (역사 | 편집) [1,790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공부인이 동(動)하고 정(靜)하는 두 사이에 수양력(修養力)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나의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정신을 빼앗아 갈 일을 짓지 말며 또는 그와 같은 경계를 멀리할 것이요, 둘째는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 말며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것이요, 세째는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에 끌리지...)
  • 07:442026년 5월 2일 (토) 07:44 대종경 수행품1장 (역사 | 편집) [1,539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대들에게 일상 수행의 요법을 조석으로 외게 하는 것은 그 글만 외라는 것이 아니요, 그 뜻을 새겨서 마음에 대조하라는 것이니, 대체로는 날로 한 번씩 대조하고 세밀히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살피라는 것이라, 곧 심지(心地)에 요란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심지에 어리석음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심지에 그름이 있었는가 없었는...) 태그: 시각 편집: 전환됨

2026년 4월 30일 (목)

2026년 4월 29일 (수)

  • 15:292026년 4월 29일 (수) 15:29 대종경 교의품39장 (역사 | 편집) [1,714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물으시기를 「우리가 기위 한 교문을 열었으니 어찌하여야 과거의 모든 폐단을 개선하고 새로운 종교로써 세상을 잘 교화하겠는가.」 박 대완(朴大完)이 사뢰기를 「모든 일이 다 가까운 데로부터 되는 것이오니 세상을 개선하기로 하오면 먼저 우리 각자의 마음을 개선하여야 하겠나이다.」 송 만경(宋萬京)이 사뢰기를 「우리의 교리와 제도가 이미 시대...)
  • 15:292026년 4월 29일 (수) 15:29 대종경 교의품38장 (역사 | 편집) [1,011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종교와 정치가 세상을 운전하는 것은 수레의 두 바퀴 같나니, 만일 두 바퀴가 폐물이 되었다든지, 또는 한 바퀴라도 무슨 고장이 있다든지, 또는 그 운전사의 운전이 서투르다면 그 수레는 잘 운행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런즉, 어찌하여야 그 수레를 잘 운전하여 수레의 본분을 잃지 아니하게 할 것인가. 이는 곧 두 가지 방법이 있나니, 하나...)
  • 15:282026년 4월 29일 (수) 15:28 대종경 교의품37장 (역사 | 편집) [2,200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선원 해제식에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중(禪中) 삼개월 동안에 바람 불리는 법을 그대들에게 가르쳤노니, 그대들은 바람의 뜻을 아는가. 무릇, 천지에는 동남과 서북의 바람이 있고 세상에는 도덕과 법률의 바람이 있나니, 도덕은 곧 동남풍이요 법률은 곧 서북풍이라, 이 두 바람이 한 가지 세상을 다스리는 강령이 되는 바, 서북풍은 상벌을 주...)
  • 15:282026년 4월 29일 (수) 15:28 대종경 교의품36장 (역사 | 편집) [1,18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종교와 정치는 한 가정에 자모(慈母)와 엄부(嚴父)같나니 종교는 도덕에 근원하여 사람의 마음을 가르쳐 죄를 짓기 전에 미리 방지하고 복을 짓게 하는 법이요, 정치는 법률에 근원하여 일의 결과를 보아서 상과 벌을 베푸는 법이라, 자모가 자모의 도를 다하고 엄부가 엄부의 도를 다하여, 부모가 각각 그 도에 밝으면 자녀는 반드시 행복을...)
  • 15:272026년 4월 29일 (수) 15:27 대종경 교의품35장 (역사 | 편집) [99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이 병들을 고치기로 할진대 무엇보다 먼저 도학을 장려하여 분수에 편안하는 도와, 근본적으로 은혜를 발견하는 도와, 자력 생활하는 도와, 배우는 도와, 가르치는 도와, 공익 생활하는 도를 가르쳐서 사람 사람으로 하여금 안으로 자기를 반성하여 각자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게 하는 동시에, 선병자 의(先病者醫)라는 말과 같...)
  • 15:272026년 4월 29일 (수) 15:27 대종경 교의품34장 (역사 | 편집) [3,297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영산에서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세상은 전에 없던 문명한 시대가 되었다 하나 우리는 한갓 그 밖으로 찬란하고 편리한 물질 문명에만 도취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에 따르는 결함과 장래의 영향이 어떠할 것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지금 세상은 밖으로 문명의 도수가 한층 나아갈수록 안으로 병맥(病脈)의 근원이 깊어져서 이것을 이...)
  • 15:262026년 4월 29일 (수) 15:26 대종경 교의품33장 (역사 | 편집) [845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과거에는 부처님께서 모든 출가 수행자에게 잘 입으려는 것과 잘 먹으려는 것과 잘 거처하려는 것과 세상 낙을 즐기려는 것들을 다 엄중히 말리시고 세상 낙에 욕심이 나면 오직 심신을 적적하게 만드는 것으로만 낙을 삼으라 하시었으나, 나는 가르치기를 그대들은 정당한 일을 부지런히 하고 분수에 맞게 의·식·주도 수용하며, 피로의 회...)
  • 15:252026년 4월 29일 (수) 15:25 대종경 교의품32장 (역사 | 편집) [952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물질 문명과 도덕 문명의 두 가지 혜택으로 그 생활에 한 없는 편리와 이익을 받게 되나니, 여러 발명가와 도덕가에게 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나니라. 그러나, 물질 문명은 주로 육신 생활에 편리를 주는 것이므로 그 공효가 바로 현상에 나타나기는 하나 그 공덕에 국한이 있으며, 도덕 문명은 원래 형상 없는 사람의 마음을...)
  • 15:252026년 4월 29일 (수) 15:25 대종경 교의품31장 (역사 | 편집) [920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안으로 정신 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 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 그러나, 만일 현대와 같이 물질 문명에만 치우치고 정신 문명을 등한시하면 마치 철 모르는 아이에게 칼을 들려 준 것과 같아서 어느 날 어느 때에 무슨 화를 당할 지 모를 것이니,...)
  • 15:232026년 4월 29일 (수) 15:23 대종경 교의품30장 (역사 | 편집) [1,777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말씀하시기를 「지금 세상은 물질 문명의 발전을 따라 사·농·공·상에 대한 학식과 기술이 많이 진보되었으며, 생활 기구도 많이 화려하여졌으므로 이 화려한 물질에 눈과 마음이 황홀하여지고 그 반면에 물질을 사용하는 정신은 극도로 쇠약하여, 주인된 정신이 도리어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말았으니 이는 실로 크게 근심될 현상이라.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물...)
  • 15:232026년 4월 29일 (수) 15:23 대종경 교의품29장 (역사 | 편집) [1,610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물으시기를 「그대들은 여기서 무엇을 배우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하시니, 한 선원(禪員)은 「삼대력 공부를 한다 하겠나이다.」하고, 또 한 선원은 「인생의 요도를 배운다 하겠나이다.」하며, 그 밖에도 여러 사람의 대답이 한결같지 아니한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말이 다 그럴 듯 하나 나...)
  • 15:222026년 4월 29일 (수) 15:22 대종경 교의품28장 (역사 | 편집) [1,137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김 영신에게 물으시기를 「사람이 세상에서 생활하기로 하면 어떠한 것이 제일 긴요한 것이 되겠느냐.」 영신이 사뢰기를 「의·식·주에 관한 것이 제일 긴요하다고 생각하나이다.」 또 물으시기를 「네가 학교에서 배운 여러 과목 중에서는 어떠한 과목이 제일 긴요한 것이 되겠느냐.」 영신이 사뢰기를 「수신하는 과목이 제일 긴요하다고 생각되나이다....)
  • 15:222026년 4월 29일 (수) 15:22 대종경 교의품27장 (역사 | 편집) [1,056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선원에 출석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인의화(李仁義華)가 지금 큰 발심이 나서 영업하는 것도 잊어 버리고, 예회를 본다 선원에 참예한다 하여 그 신성이 대단하므로 상을 주는 대신에 이 시간을 인의화에게 허락하노니 물을 일이 있거든 물어보라.」 인의화 여쭙기를 「어떤 사람이 너희 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 15:082026년 4월 29일 (수) 15:08 대종경 교의품26장 (역사 | 편집) [1,01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부산 지방에 가시었더니, 교도 몇 사람이 와서 뵈옵고 말하기를 「저희들이 대종사의 법을 한량없이 흠앙하오나, 다만 어업으로써 생계를 삼으므로 항상 첫 계문을 범하게 되오니, 이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퇴굴심이 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근심하지 말라. 사람의 생업(生業)은 졸지에 바꾸기 어렵나니, 그대들의 받은 삼십 계문 가운데에 그 한...)
  • 15:082026년 4월 29일 (수) 15:08 대종경 교의품25장 (역사 | 편집) [2,653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목사 한 사람이 말하기를 「예로부터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대개 계율(戒律)을 말하였으나 저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도리어 사람의 순진한 천성을 억압하고 자유의 정신을 속박하여 사람을 교화하는데 적지 않은 지장이 되는가 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어떠한 점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목사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종교의 진리를 이해...)
  • 15:072026년 4월 29일 (수) 15:07 대종경 교의품24장 (역사 | 편집) [1,041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송 도성(宋道性)이 여쭙기를 「제가 전 일에 옛 성인의 경전도 혹 보았고 그 뜻의 설명도 들어보았사오나 그 때에는 한갓 읽어서 욀 뿐이요, 도덕의 참 뜻이 실지로 해득되지 못하옵더니 대종사를 뵈온 후로는 차차 사리에 밝아짐이 있사오나, 알고 보니 전에 보던 그 글이요, 전에 듣던 그 말씀이온데, 어찌 하여 모든 것이 새로 알아지는 감이 있사온지 그 이유를 알...)
  • 15:032026년 4월 29일 (수) 15:03 대종경 교의품23장 (역사 | 편집) [30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교화하는 법은 비하건대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로부터 뿌리에 이르게도 하고, 뿌리로부터 가지와 잎사귀에 이르게도 하나니, 이는 각각 그 사람의 근기를 따라 법을 베푸는 연고이니라.」 {{원불교 교전}})
  • 15:022026년 4월 29일 (수) 15:02 대종경 교의품22장 (역사 | 편집) [455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의 천만 경계에 항상 삼학의 대중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니, 삼학을 비유하여 말하자면 배를 운전하는데 지남침 같고 기관수 같은지라, 지남침과 기관수가 없으면 그 배가 능히 바다를 건너지 못할 것이요, 삼학의 대중이 없으면 사람이 능히 세상을 잘 살아 나가기가 어렵나니라.」 {{원불교 교전}})
  • 15:022026년 4월 29일 (수) 15:02 대종경 교의품21장 (역사 | 편집) [871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경전으로 배울 때에는 삼학이 비록 과목은 각각 다르나, 실지로 공부를 해나가는 데에는 서로 떠날 수 없는 연관이 있어서 마치 쇠스랑의 세 발과도 같나니, 수양을 하는 데에도 연구·취사의 합력이 있어야 할 것이요, 연구를 하는 데에도 수양·취사의 합력이 있어야 할 것이요, 취사를 하는 데에도 수양·연구의 합력이 있어야 하나니라....)
  • 14:582026년 4월 29일 (수) 14:58 대종경 교의품20장 (역사 | 편집) [810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재래 사원에서는 염불종(念佛宗)은 언제나 염불만 하고, 교종(敎宗)은 언제나 간경(看經)만 하며, 선종(禪宗)은 언제나 좌선만 하고, 율종(律宗)은 언제나 계(戒)만 지키면서, 같은 불법 가운데 서로 시비 장단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다 계·정·혜 삼학의 한 과목들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병진하게 하되, 매일 새벽에는 좌선을...)
  • 14:522026년 4월 29일 (수) 14:52 대종경 교의품19장 (역사 | 편집) [1,019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한갓 의·식·주를 구하는 데만 힘을 쓰고, 그 의·식·주를 나오게 하는 원리는 찾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실로 답답한 일이라, 육신의 의·식·주가 필요하다면 육신 생활을 지배하는 정신에 일심과 알음알이와 실행의 힘은 더 필요할 것이 아닌가. 정신에 이 세 가지 힘이 양성되어야 그에 따라 의·식·주가 잘 얻어질 것...)
  • 14:522026년 4월 29일 (수) 14:52 대종경 교의품18장 (역사 | 편집) [1,455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 공부의 요도 삼학(三學)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데에 가장 필요한 법이며, 잠간도 떠날 수 없는 법이니, 예를 들면 육신에 대한 의·식·주(衣食住) 삼건(三件)과 다름이 없다 하노라. 즉, 우리의 육신이 이 세상에 나오면 먹고 입고 거처할 집이 있어야 하나니, 만일 한 가지라도 없으면 우리의 생활에 결함이 있게...)
  • 14:352026년 4월 29일 (수) 14:35 대종경 교의품17장 (역사 | 편집) [1,36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한 제자 심고의 감응되는 이치를 여쭙거늘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심고의 감응은 심고하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무위 자연한 가운데 상상하지 못할 위력을 얻게 되는 것이라, 말로써 이를 다 증거하기가 어려우나, 가령 악한 마음이 자주 일어나 없애기가 힘이 드는 때에 정성스럽게 심고를 올리면 자연중 그 마음이 나지 않고 선심으로 돌아가게 되며, 악을 범하지...)
  • 14:352026년 4월 29일 (수) 14:35 대종경 교의품16장 (역사 | 편집) [1,232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김영신(金永信)이 여쭙기를 「사은 당처에 실지 불공하는 외에 다른 불공법은 없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공하는 법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은 당처에 직접 올리는 실지 불공이요, 둘은 형상 없는 허공 법계를 통하여 법신불께 올리는 진리 불공이라, 그대들은 이 두 가지 불공을 때와 곳과 일을 따라 적당히 활용하되 그 원하는 일이 성공되도록까...)
  • 14:212026년 4월 29일 (수) 14:21 대종경 교의품15장 (역사 | 편집) [1,431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봉래 정사(蓬萊精舍)에 계실 때에 하루는 어떤 노인 부부가 지나가다 말하기를, 자기들의 자부(子婦)가 성질이 불순하여 불효가 막심하므로 실상사(實相寺) 부처님께 불공이나 올려 볼까 하고 가는 중이라고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어찌 등상불에게는 불공할 줄을 알면서 산 부처에게는 불공할 줄을 모르는가.」 그 부부 여쭙기...)
  • 14:202026년 4월 29일 (수) 14:20 대종경 교의품14장 (역사 | 편집) [1,722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시대는 전세계 인류가 차차 장년기에 들어 그 지견이 발달되는지라, 모든 사람이 고락 경계를 당할 때에는 혹 죄복에 대한 이해가 있을 것이며, 죄복에 대한 이해가 있고 보면 그 죄복의 근본처를 찾을 것이며, 찾고 보면 그 뜻이 드러날 것이요, 그 뜻이 드러나고 보면 잘 믿을 것이니, 사실로 이해하기 좋은 신앙처를 발견하여 숭배하면 지자...)
  • 14:192026년 4월 29일 (수) 14:19 대종경 교의품13장 (역사 | 편집) [786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상을 숭배하는 것이 교화 발전에 혹 필요가 있기도 하였으나 현재로부터 미래를 생각하면 그렇지 못할 것이 사실이니, 사람들이 저 불상을 수 천년이나 모셔 보았으므로 이제는 점차 그 위력에 대한 각성이 생겨날 것이요, 각성이 생겨난다면 무상 대도의 이치는 알지 못하고 다만 그 한 방편만 허무하다 하여 믿지 않게 될 것이라 어찌 발...)
  • 14:192026년 4월 29일 (수) 14:19 대종경 교의품12장 (역사 | 편집) [743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한 제자 여쭙기를 「불상 숭배와 일원상 숭배의 다른 점은 어떠하옵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상 숭배는 부처님의 인격에 국한하여 후래 제자로서 그 부처님을 추모 존숭하는 데에 뜻이 있을 뿐이나, 일원상 숭배는 그 뜻이 실로 넓고 크나니, 부처님의 인격만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보다 우주 만유 전체를 다 부처님으로 모시고 신앙하여 모든 죄복과...)
  • 14:182026년 4월 29일 (수) 14:18 대종경 교의품11장 (역사 | 편집) [1,126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여쭙기를 「일원상과 서가모니 불과의 관계는 어떠하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원은 곧 모든 진리의 근원이요, 서가모니 불은 이 진리를 깨치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시니, 비록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진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를 발견하여 가르쳐 주시는 분이 없다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활용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서가모니 불이 이 세상에...)
  • 14:172026년 4월 29일 (수) 14:17 대종경 교의품10장 (역사 | 편집) [974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여쭙기를 「일원상을 모시고 죄복의 출처를 사실적으로 해석하여 가르치는 것이 인지가 발달된 이 시대에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는 극히 적합할 일이오나, 어느 세상을 물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적고 어리석은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오니, 어리석은 대중에게 신심을 넣어 주는 데에는 불상을 모시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아니하겠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 14:162026년 4월 29일 (수) 14:16 대종경 교의품9장 (역사 | 편집) [1,566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한 사람이 여쭙기를 「귀교에서는 어느 부처님을 본사(本師)로 모시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불을 본사로 숭배하노라.」 또 여쭙기를 「서가모니불이 본사일진대 법당에 어찌 서가모니 불상을 모시지 아니하고 일원상을 모셨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 불상이 우리에게 죄 주고 복 주는 증거는 사실적으로 해석하여 가르치기가...)
  • 14:142026년 4월 29일 (수) 14:14 대종경 교의품8장 (역사 | 편집) [844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현묘한 진리를 깨치려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실생활에 활용하고자 함이니 만일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다면 이는 쓸 데 없는 일이라, 이제 법신불 일원상을 실생활에 부합시켜 말해 주리라. 첫째는 일원상을 대할 때마다 견성 성불하는 화두(話頭)를 삼을 것이요, 둘째는 일상 생활에 일원상과 같이 원만하게 수행하여...)
  • 14:142026년 4월 29일 (수) 14:14 대종경 교의품7장 (역사 | 편집) [80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원의 진리를 요약하여 말하자면 곧 공(空)과 원(圓)과 정(正)이니, 양성에 있어서는 유무 초월한 자리를 관하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거래 없는 것이 원이요,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정이며, 견성에 있어서는 일원의 진리가 철저하여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는 자리를 아는 것이 공이요, 지량(知量)이 광대하여 막힘이 없는...)
  • 14:132026년 4월 29일 (수) 14:13 대종경 교의품6장 (역사 | 편집) [683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여쭙기를 「그러하오면 도형(圖形)으로 그려진 저 일원상 자체에 그러한 진리와 위력과 공부법이 그대로 갊아 있다는 것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저 원상은 참 일원을 알리기 위한 한 표본이라, 비하건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손가락이 참 달은 아닌 것과 같나니라. 그런즉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저 표본의 일원상으로 인하여 참 일원을 발견하...)
  • 14:122026년 4월 29일 (수) 14:12 대종경 교의품5장 (역사 | 편집) [1,450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여쭙기를 「일원상의 수행은 어떻게 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그 진리를 체받아서 자기의 인격을 양성하나니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아 천지 만물의 시종 본말과 인간의 생·로·병·사와 인과 보응의 이치를 걸림 없이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과 같이 마음 가운데에 아무 사심(私心)이 없고 애욕과 탐착에 기울고 굽히...)
  • 14:122026년 4월 29일 (수) 14:12 대종경 교의품4장 (역사 | 편집) [834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또 여쭙기를 「일원상의 신앙은 어떻게 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나니,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
  • 13:432026년 4월 29일 (수) 13:43 요양원 기록물 아카이브 데이터베이스 구조 (역사 | 편집) [11,129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요양원 아카이브 시스템)

2026년 4월 28일 (화)

  • 18:352026년 4월 28일 (화) 18:35 대종경 교의품3장 (역사 | 편집) [1,368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광전(光田)이 여쭙기를 「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떠하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네가 큰 진리를 물었도다. 우리 회상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 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 18:312026년 4월 28일 (화) 18:31 대종경 교의품2장 (역사 | 편집) [445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한 제자 여쭙기를 「어떠한 것을 큰 도라 이르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천하 사람이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천하의 큰 도요, 적은 수만 행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도라 이르나니, 그러므로 우리의 일원 종지와 사은 사요 삼학 팔조는 온 천하 사람이 다 알아야 하고 다 실행할 수 있으므로 천하의 큰 도가 되나니라.」 {{원불교 교전}})
  • 18:292026년 4월 28일 (화) 18:29 대종경 교의품1장 (역사 | 편집) [1,721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모든 교주(敎主)가 때를 따라 나오시어 인생의 행할 바를 가르쳐 왔으나 그 교화의 주체는 시대와 지역을 따라 서로 달랐나니, 비유하여 말하자면 같은 의학 가운데도 각기 전문 분야가 있는 것과 같나니라. 그러므로, 불가(佛家)에서는 우주 만유의 형상 없는 것을 주체삼아서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 보응의 이치를 가르쳐 전미 개오(...) 태그: 시각 편집: 전환됨
  • 18:202026년 4월 28일 (화) 18:20 대종경 서품19장 (역사 | 편집) [2,445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또 말씀하시기를 「과거 불가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혹은 경전을 가르치며, 혹은 화두(話頭)를 들고 좌선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염불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주문을 가르치며, 혹은 불공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치는 본의가 모든 경전을 가르쳐서는 불교에 대한 교리나 제도나 역사를 알리기 위함이요, 화두를 들려서 좌선을 시키는 것은 경전으로...)
  • 18:172026년 4월 28일 (화) 18:17 대종경 서품18장 (역사 | 편집) [2,867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또 말씀하시기를 「과거의 불교는 출세간 생활을 본위로 하여 교리와 제도가 조직이 되었으므로, 세간 생활하는 일반 사람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잘 맞지 아니하였으며, 세간 생활하는 신자는 주가 되지 못하고 객과 같이 되었으므로 그 중에서 특수한 사업과 특별한 공부를 한 사람이 있다면이어니와, 그렇지 못한 보통 신자는 출세간 공부하는 승려와 같이...)
  • 09:022026년 4월 28일 (화) 09:02 대종경 서품17장 (역사 | 편집) [2,897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무상 대도는 한량 없이 높고, 한량 없이 깊고, 한량 없이 넓으며, 그 지혜와 능력은 입으로나 붓으로 다 성언하고 기록할 수 없으나, 대략을 들어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중생이 생사 있는 줄만 알고 다생이 있는 줄은 모르는데, 부처님께서는 생사 없는 이치와 다생 겁래에 한 없는 생이 있는 줄을 더 알으셨으며, 우리는 우리...)
  • 09:002026년 4월 28일 (화) 09:00 대종경 서품16장 (역사 | 편집) [3,469 바이트] Godaejin (토론 | 기여) (새 문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교는 조선에 인연이 깊은 교로서 환영도 많이 받았으며 배척도 많이 받아 왔으나, 환영은 여러 백년 전에 받았고 배척받은 지는 오래지 아니하여, 정치의 변동이며 유교의 세력에 밀려서 세상을 등지고 산중에 들어가 유야 무야 중에 초인간적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일반 사회에서는 그 법을 아는 사람이 적은지라, 이에 따라 혹 안다는...)
(최신 | 최초) ( | ) (20 | 50 | 100 | 250 | 500)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