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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석두거사 [石頭居士] 소태산대종사의 자호(自號). 1919년(원기4년) 10월경, 전북 부안 변산으로 석장을 옮겨 봉래정사(蓬萊精舍)의 첫 주석처로 석두암(石頭庵)을 짓고, 교리강령의 제정과 회상 공개를 위한 인연 규합을 도모할 때 사용했다. 백학명(白鶴鳴)과의 선시(禪詩)의 창화 등에 나타나며 초기의 입교증(入敎證) 발급에도 사용했다.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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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거사 [石頭居士]
석두거사 [石頭居士]
소태산대종사의 자호(自號). 1919년(원기4년) 10월경, 전북 부안 변산으로 석장을 옮겨 봉래정사(蓬萊精舍)의 첫 주석처로 석두암(石頭庵)을 짓고, 교리강령의 제정과 회상 공개를 위한 인연 규합을 도모할 때 사용했다. 백학명(白鶴鳴)과의 선시(禪詩)의 창화 등에 나타나며 초기의 입교증(入敎證) 발급에도 사용했다. <원불교대사전>
소태산대종사의 자호(自號). 1919년(원기4년) 10월경, 전북 부안 변산으로 석장을 옮겨 봉래정사(蓬萊精舍)의 첫 주석처로 석두암(石頭庵)을 짓고, 교리강령의 제정과 회상 공개를 위한 인연 규합을 도모할 때 사용했다. 백학명(白鶴鳴)과의 선시(禪詩)의 창화 등에 나타나며 초기의 입교증(入敎證) 발급에도 사용했다.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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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3일 (목) 17:40 기준 최신판

석두거사 [石頭居士] 소태산대종사의 자호(自號). 1919년(원기4년) 10월경, 전북 부안 변산으로 석장을 옮겨 봉래정사(蓬萊精舍)의 첫 주석처로 석두암(石頭庵)을 짓고, 교리강령의 제정과 회상 공개를 위한 인연 규합을 도모할 때 사용했다. 백학명(白鶴鳴)과의 선시(禪詩)의 창화 등에 나타나며 초기의 입교증(入敎證) 발급에도 사용했다.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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